생활세계(生活世界)
Life-World
2021.10.20~11.17
아트레온갤러리
태고에 인류는 시간적인 한계 속의 존재로서 세계를 해석하고자 하였다. 밤과 낮이 교대로 역할을 수행하는 변화를 2차원 공간상에 효(爻)로 표현하였다. 이것이 음효(⚋)와 양효(⚊)이다. 효가 모여 괘(☰, ☷ 등)를 이루고 괘는 끈의 매듭을 통해 표현되다 선을 통해 재현된다. 그리고 이 선은 모양을 본뜨고 대상을 가리키는 수단으로 작용하여 문자와 회화의 씨앗으로 작용하였고 나아가 서예 예술과 회화 예술의 근간이 되었다. 장기간에 걸친 고대 선(線)의 발전은 문자통일정책으로 전형화 되었고, 문자와 회화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작가가 거칠게 정리한 주역의 기호와 선, 문자 및 회화에 관한 근원과 흐름, 분리의 역사이다.
작가는 문자와 회화가 서로 다른 길을 가지기 전, 즉 양자의 동질성이 훼손되기 이전의 문자나 기호를 소재로 이용하여 현대의 ‘생활세계’를 표현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생활세계’는 ‘주관적이고 일상적인 삶의 세계’를 뜻한다. 작가가 현재 살고 있는 일상의 공간을 주관적으로 바라보고, 주관적인 생명관, 자연관을 표출해 보고자 했다. 현실은 인류가 처음 접하는 바이러스로 인하여 이동과 관계가 극히 제한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거대담론보다는 개별 인간의 일상을 구성하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일상 공간에서 작가에게 다가온 대상은 버드나무다. 거주하고 있는 공간 주변의 버드나무를 통해 드러난 작가의 주관적 시각, “따름”이 이번 작품의 주제이다.
버드나무는 바람에 저항하지 아니하고 그에게 몸을 맡긴다. 타에 의하여 흔들리는 수동적인 태도를 벗어나 능동적으로 춤을 춘다. 버드나무를 인간에게 투사하면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는 것이고, 사람이 어느 때에 어떤 사람의 무엇을 따를 것인가를 주관적으로 판단하여 가능한 다름의 도를 찾을 수 있음을 내포한다.
작가는 생활공간 주변의 연못과 천변에서 생명의 움직임을 발견하던 중 버드나무를 발견하였다. 버드나무에는 자체적인 생장소멸의 과정이 있고, 주변의 흙, 물, 비, 바람 등이 함께 하며 상호작용한다.
버드나무(柳)는 '나무 목(木)'자에 '토끼 묘(卯)'자가 합쳐진 글자이다. '목(木)'에 '류(流)'와 통하는 '묘(卯)'를 붙여 긴 가지가 흐르는 것 같은 모양의 나무를 말한다. 나무(木)의 글자 생성원리를 보면 '초목이 땅을 머리로 밀면서 뚫고 나오는 모습을 상형한 '屮(철)' 부분과 뿌리를 상형한 아랫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운데 기둥을 중심으로 위로는 가지가 뻗어 나가고 아래로는 뿌리가 펼쳐진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ᅵ'을 표현할 때는 그 방향성이 중요한데 '아래에서 위로 획을 긋는'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艸(초)'가 모든 풀을 통칭한다면, '屮(철)'은 초목에서 싹이 나오는 모양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대의 문자는 한 획 한 획이 묘사하는 대상의 운동성까지를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의미와 이미지가 공존하는 상형문자를 활용하여 세필의 집적을 이루고, 이에 존재 원리를 담는 형상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개별 생명체의 각 부분에서 발현되는 생명의 진동 또는 역할의 차이는 선의 떨림의 차별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다. 선의 차별화로 하나의 나무에서 줄기와 잎에 그 개별성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선은 일견 반복되는 호흡이나 밤낮처럼 같아 보이지만 유사할 뿐 각각의 개별성을 가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화면 전체를 메운 선들의 결합으로 기(氣)의 흐름을 가지는 유기체적인 형상과 의미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