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2007.8월호 page136 exhibition review
<화면 뒤에 숨겨진 살벌한 예술가적 제스처>
서정임 기자
마치 빗살무늬 토기를 연상시키는 두터운 질감의 화면이 눈앞에 있다. 생기가 빠져나가 부스러질 것 같은 기다란 잎들이 얼기설기 얽혀있거나 금방이라도 풀어져 없어질 것 만 같은 느낌. 딱히 무엇이라 명명할 수 없는 이러한 작품들을 단지 송윤주의 <素-풀기>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작가는 그동안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기법과 연구로 회화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와 신념을 드러내며 그 과정을 온전히 화면에 담아왔다. 또한 어떤 테두리를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과정에서 변화되는 요인을 그대로 수용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렇기에 예술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 하는 태도를 무시하듯 자족적이다. 아니 집요하리만큼 물질의 표현과 형식을 수행하며 지극히 회화적 입장에 서 있다.
이러한 송윤주의 작업은 장지 위에 흰색 안료와 아교를 섞어 밑작업으로 여러 번의 덧칠 후 두께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송곳으로 긁어내, 다시 먹색을 입히는 부조의 방식을 취한다. 또한 이를 행하기에 앞서 종이를 접거나 오려 만든 입체적 형체를 다시 종이로 풀어 평면에 그린다. 이는 예술가의 제스처에 주목한 것인데 손으로 무엇을 만들고, 화면에 그것을 붙이고 긁어냄으로써 조각적 메커니즘을 평면에 취한 것이다. 하여 그의 화면은 이러한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흰색 사이사이로 묘하게 올라오는 먹색의 선묘와 함께 힘든 육체노동으로 인한 많은 공력을 느낄 수 있다.
작업초반, 그는 단지 두터운 질감에 송곳으로 긁어내며 선을 보여주었고 그 후 이름지울 수 없는 형상을 띄며 마치 실타래 같은, 둥글게 얽혀진 형태로 변이하였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전작의 요소에서 조금씩 풀어지던 선(線)을, ‘풀기’라고 덧붙여진 제목에서 예견하듯 조심스럽게 펼쳐놓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들은 엉켜있으며 형식적인 면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그러한 수많은 선들과 흔적의 형상은 규정짓기 좋아하는 우리를 어떠한 일루젼으로(제각각 받아들이는 감상자의 상상으로)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