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세상을 비움으로 채우다
임근혜(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물감을 겹겹이 올린 화면을 사포로 긁어 노동의 흔적을 남긴 재료의 실험과 더불어 송윤주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된 요소는 우주의 이치와 원리를 기호화된 이미지이다. 한지와 먹의 물성이 기호와 상징, 재현과 서사,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과 하나의 화면에서 공존한다. 화면의 구성은 최소한의 조형요소로 보이는 기하학적 도형과 기본 색으로 이루어지는데, 작가는 이를 추상이라 설명하기보다는 고대인이 사용한 음양 기호를 통해 만든 '상(象)'이 지닌 의미를 조합하여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추상도 구상도 아닌, 또는 추상이기도 하고 구상이기도 한 이 그림은 매우 단순한 듯 보이지만 독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작품 속의 조형요소의 출처가 유교 경전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주역〉이며, 오랜 시간 연구해온 작가의 내공을 짧은 시간 동안 따라잡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역의 사상을 담고 있는 음양 기호를 사용한 가장 쉬운 예는 의외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대한민국 땅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태극기가 바로 대자연의 원리를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태극을 중심으로 각 모서리의 네 개의 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으로, 건은 하늘 곤은 땅 감은 물 리는 불을 각각 상징한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에서 믿은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4원소 -물 불 공기 흙- 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음과 양의 부호를 조합하여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 8괘를 이루고, 이들이 서로 '관계맺기'하여 우주 자연의 본질, 변화, 관계 형상을 64가지로 펼치고, 매 가지에는 6개의 잎을 달고 있다."
예술을 공부한 사람은 몰라도 주역을 공부한 사람은 이해한다는 〈이상세계(以象世界)〉의 구성 원리를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음+양+양=바람(☴), 양+음+음=번개(☳), 음+음+양=산(☶), 양+양+음=연못(☱), 양+음+양=불(☲)... 이런 식으로 음양 기호는 자연 현상을 가리키는 기호가 된다. 여기에 부가적인 요소 -색과 크고 작은 원- 이 더해져서 의미가 더욱 확장된다. 예를 들면, 사각의 괘가 원과 합쳐져서 '가족', '솥', '동지' 같은 보통명사, '포용', '가능성', '정열' 등의 추상명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의 조합과 변화를 통해 괘는 상형이 되고 종국에는 하나의 스토리를 형성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동양철학에 근간한 방법론이 작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일상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생활 속에서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의문이 생길 때나 세상의 이치를 알고 싶을 때 수시로 직접 괘를 뽑는다고 한다. 이는 카드의 그림을 읽는 타로점이나 찻잔에 남은 찻잎으로 길흉을 점치는 점술 행위처럼 보이지만, 작가의 의도는 보편적인 자연의 질서와 원리 속에서 삶의 지침이나 단서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외면함으로써 개별 사건을 거리를 두고 세상의 이치 속에서 다시 보게 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작가 나름대로 "합리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우연적 방식을 통해 무의식에 기대어 우연과 필연, 의식과 무의식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지는 순리를 깨치고 따르는 방식이랄까.
사실, 스튜디오에서 처음 접한 그의 '괘' 작품은 하얀 바탕 위에 검은 사각형을 그려 넣은 말레비치나 수평 수직의 선과 무채색과 삼원색이라는 최소한의 조형요소를 사용한 몬드리안을 연상시키고, 도시나 산 수풍경을 기호로 표현한 '문자산수'를 보면서 클레를 떠올렸다. 이들은 20세기 초 시각예술이 자연의 재현이라는 대전제로부터 결별하고 순수한 내재적 논리를 전개하며 추상을 발전시킬 때 각각 '신조형주의', '절대주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사조로 불리며 아방가르드를 이끌었던 주역들이다. 명칭은 다르지만 이들 모두 종교, 철학, 과학, 예술을 넘어선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며 시각적 조화를 통해 유물론적 사고로 한계에 다다른 세상을 우주의 원리와 질서로 이끌려고 한 일종의 신비주의적 사상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즉,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은 자연의 재현에서 벗어나 구상적 요소를 제거하고 탈 자연화된 결과물이며,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는 운동감과 무게감 등 자율적인 실재성을 지닌 사각형을 통해 회화와 대상과의 관계를 완전히 거부한 것이다. 대상의 재현은 완전히 버리지 못했지만 자동기술적 방식으로 자연과 사물의 이미지를 표현한 클레는 음악적 리듬감을 통해 우주적 조화를 추구했다.
세계대전의 대혼란 속에서 추상미술이 발달해온 사실은 일찍이 보링거가 모방론에 기초한 고전미학에 대립하여 주장한 '추상충동', 즉, 추상이 인간과 외부세계와의 분리와 부조화에서 오는 내적 불안에서 기인하며 무질서하고 불가해한 이 세상을 완벽히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그 본질을 추출하여 표현한다는 내용에 설득력을 더하였다. 어쩌면, 전지구적 현상이 된 테러와 자연재해 그리고 불평등 등의 파국의 징후들이 세계대전 당시의 불길한 예감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불안정한 세상 속에서 예술을 통해 삶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송윤주의 작업은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회화를 이끌었던 대가들의 태도와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서양의 추상미술 운동이 회화 평면으로부터 자연을 암시하는 재현적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려고 한 반면, 송윤주는 재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추상적 기호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극단을 피하고 양극을 연결하는 순환고리를 찾는다. 작가는 상징적 의미를 조합하여 표현된 기호를 다시 이미지화하는 과정을 통해 "기호가 갖는 의미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자연을 인간의 삶에 나타나는 감정 내지 상태로 확장"한다. 즉, 재현을 떠나 궁극의 추상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의 재현을 위해 추상과 재현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상형문자로 실제와 비실제의 공간과 풍경을 다룬 〈문자산수〉 이후의 작업이 주역의 '괘'를 조형과 상징의 근간으로 삼은 〈이상세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작업이 순수 추상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넘겨짚을 만도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괘와 상형이 어우러져 일련의 서사를 형성하는 작업을 구상 중이다. 새로운 작업의 완독을 위하여 주역을 공부해야 하는지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작가의 소통 의지가 이를 극복시켜 주리라 믿는다. 이를 통해 "추상과 구상은 하나"이며 "기호가 곧 이미지"라는 작가의 논리를 더욱 명료하게 확인시켜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