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의적 회화, 회화적 제의
최석원(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협동과정 미술경영 부교수)
송윤주의 회화 작업은 중국 상고시대의 상징 체계에 착안하여 ‘기호 이미지’라고 부를 수 있는 간소하면서도 함축적인 조형 단위를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2002년의 첫 개인전 《소(素)》 이후 한동안 회화의 바탕에 대한 탐구에 몰두했다. 다섯 번째 개인전 《문자연(文字宴)》(2009)부터는 상형문자를 조형 요소로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이상세계(以象世界): 상으로 본 세계》(2015) 이후로는 『주역』의 괘(卦)와 괘상(卦象)을 모티프로 한 작업을 병행해 왔다. 작가가 상형문자와 괘상을 조형의 원천으로 삼는 것은 그림, 기호, 문자로 분화되기 이전의 시원적 형상 체계를 현재로 소환하기 위해서이다. 나아가 그는 형상이 삶과 세계의 요체를 드러낼 수 있다고 여겼던 고대의 의미 체계를 자신의 작업 속에서 새롭게 작동시키고자, 원형적 기호 이미지를 주요한 조형 언어로 구사한다.
송윤주는 기호처럼 단순한 형태를 띠면서도 그림보다 풍부한 의미를 내포한 기호 이미지를 화면에 펼쳐, 자신이 인식하고 염원하는 세계의 축도를 구성한다. 그는 이번 개인전 《마치 있는 것처럼[如在]》(2025)에서 오랜 기간 축적해 온 기호 이미지를 바탕으로 고대와 현대, 삶과 죽음, 인간과 우주를 아우르는 통합적 세계관을 ‘제의적 회화’로 풀어낸다. 부재하는 것을 마치 현존하는 것처럼 대하라는 『논어』의 제의적 명제를 전시 제목으로 삼아, 고대로부터 발굴해 낸 기호 이미지를 화면 위에 배치함으로써 일종의 ‘회화적 제의’를 수행한다. 시공간적으로 사라졌으나 여전히 작용하는 것,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실재하는 것을 ‘마치 있는 것처럼’ 호출하여 현전하게끔 하기 위해, 작가는 전시장을 하나의 거대한 제단으로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서 송윤주는 제사와 관련된 장소, 사물, 자연, 우주를 소재로 삼아 현세 이전의 고대 세계와 죽음 이후의 존재인 귀신(鬼神)을 자신의 회화 세계로 불러들인다. 전시를 여는 <뱀이 거북을 먹으러 간다>를 필두로 <솔의 향기>, <연못과 현자>, <빈집>, <소요정(逍遙亭)>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에서는 서울 도성 내 정치와 제의의 핵심 공간을 지도 형식으로 재구성한다. 한편 <허수(虛宿) 별에 바치다>는 종묘제례에 사용되는 각종 제기를 주황색 단색으로 그려 일렬로 배치한 작품으로, 이는 전시장 벽면을 제기가 진설된 하나의 제상(祭床)으로 전환시킨다. 칠성(七星) 부적을 차용한 <북두칠성>과 오곡을 가지런히 배열한 <오행성>은 제사를 매개로 소환되는 우주와 자연을 상징한다. 길상적 의미의 전서(篆書)와 상서로운 동물 도상 그리고 수막새 문양을 병치한 <안녕>은 작품 제목처럼 제의를 통해 도달하기를 염원하는 태평의 상태를 표상한다.
지형과 방위를 고려하여 터를 정하고 다지는 일이 고대 국가 성립의 출발점이었듯, 작가는 조선 도성의 핵심 장소를 그리는 것으로 회화적 제의를 시작한다. <뱀이 거북을 먹으러 간다>를 비롯한 지도식 회화는 덕수궁을 중심으로 사직단과 환구단, 그리고 창덕궁의 주요 공간과 종묘를 배치도 형식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 작품들은 종묘와 사직단을 궁궐의 좌우에 두는 ‘좌묘우사(左廟右社)’와 같은 『주례(周禮)』의 도성 조영 원칙이 조선에까지 계승되었음을 보여 준다. 하늘과 땅에 대한 제사와 국가 운영이 긴밀하게 맞물려 있던 고대적 세계관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송윤주는 오늘날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 도성의 공간 배치를 고대 세계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 따라서 그의 ‘배치도 회화’에 상형문자, 갑골문, 전서 등 고대 문자에 근원을 둔 기호 이미지가 사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개인전 《문자산수》(2011)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인, 자연과 도시 그리고 별자리 등을 특유의 기호 이미지로 표현하는 방식은 도성을 형상화하는 데 적용되면서 형식과 의미 모두가 송윤주가 지향하는 고대 세계로 한층 더 일관되게 수렴된다. 이러한 계열의 작품을 ‘배치도 회화’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은, 작가가 도성을 구성하는 전각과 수목의 개별적 형태보다 그것들이 화면 안에 어떻게 배치되고 서로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에 주안을 두기 때문이다.
배치도 회화에서 건축물은 먹색으로, 자연물은 주황색으로 그려진다. 이는 고대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현상’과 보이지는 않지만 작가가 마치 있는 것처럼 가시화하고자 하는 ‘기운’을 구분하기 위한 색채 운용 방식이다. 화면 곳곳에 배치된 둥근 고리는 작가가 『주역』의 괘상을 형상화할 때부터 사용해 온 도상으로, 이번 배치도에서는 각 장소에서 발산되는 신령한 기운을 시각화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작가는 이 고리들을 나무와 동일한 주황색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연이 신성(神性)과 연결된다는 전통적 사유를 드러낸다. 같은 맥락에서 <찬란한 날>에서도 하늘과 땅을 매개한다고 여겨진 ‘出’자 형태의 신성한 나무를 주황색으로 표현했다.
송윤주 회화의 바탕은 흰 색조로 일관되는데, 그의 흰 바탕은 남겨지는 여백이 아니라 채워지는 본체에 가깝다. 흰 바탕이 마련된 이후에야 그림이 가능하다는 ‘회사후소(繪事後素)’를 문자 그대로 회화적 명제로 구현하려는 듯, 작가는 바탕 자체를 공들여 제작한다. 그는 첫 네 차례의 개인전에서 바탕과 흰색을 아울러 뜻하는 ‘소(素)’를 표제로 삼아, 바탕의 물성은 물론 바탕과 형상 사이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아교를 수차례 포수한 장지 위에 호분과 티타늄화이트 등의 백색 안료를 겹겹이 쌓아 올려 바탕을 구축한다. 특히 형상의 배치와 배열이 중요한 도성과 오곡을 다룬 작품에서는 흰 안료를 쌓는 사이사이에 먹과 연필로 정방형의 흑선을 긋고 화면을 사포로 긁어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형성된 바탕은 불규칙한 질감을 지닌 물질적 지층이자 격자형 좌표가 새겨진 지면처럼 보인다. 이렇게 구축되고 구획된 바탕은 제의적 맥락에서 시간의 축적과 공간적 위상을 드러내려는 전시의 주제와 긴밀히 호응한다. 송윤주에게 바탕을 만드는 일은 정성스레 제단을 차리는 일과 다름없다.
종묘제례용 제기를 균질한 주황색으로 표현한 <허수 별에 바치다>는 제사상 차림의 완성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제목의 ‘허수’는 고대의 이십팔수(二十八宿) 가운데 하나로, 뱀과 거북이가 얽힌 형상의 현무(玄武)가 관장하는 북방의 별자리이다. 허수가 죽음과 제사를 주재하는 별로 여겨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허수 별에 바치다>에 등장하는 제기와 <뱀이 거북을 먹으러 간다>에 그려진 제의 공간은 모두 작품 제목과 조응한다. 예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어 온 북방의 칠성을 전통 부적의 형식을 차용해 전서체로 표현한 <북두칠성>이 보여 주듯, 송윤주는 일관되게 고대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회화적 제의를 전개한다.
도성 배치도인 <뱀이 거북을 먹으러 간다>에 곡식의 신인 직신(稷神)에게 제의를 올리는 사직단이 묘사되고, 제기를 그린 <허수 별에 바치다>에서 곡식을 담는 사각의 보(簠)와 둥근 궤(簋)가 확인되듯, 송윤주는 고대 제의에서 곡식이 지니는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곡을 그린 <오행성(五行星)> 연작을 함께 내놓는다. <오행성>은 오곡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곡식의 알갱이를 격자를 그린 바탕 위에 균정하게 나열하여 완성한 작품이다. 작품마다 쌀, 보리, 귀리, 완두콩, 팥 등의 곡식이 서로 다르게 조합되며, 곡식의 종류에 따라 백색, 황색, 적색, 청색, 연두색, 흑색 등으로 채색된다. 격자형 바탕을 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작품당 천여 개에 이르는 곡식의 윤곽을 먹선으로 제각각 그리고, 다시 그 내부를 일일이 채색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송윤주의 작업은 곡식 농사에 비견될 만큼 노동집약적이고 수행적인 과정을 수반한다. 인간 생명의 원천으로 여겨져 온 오곡을 작가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의 노동을 통해 그려 내어 제상에 올리는 셈이다. 그리기의 제의로서 인간의 일을 다한 작가는 오곡을 우주 만물과 인간 세계를 구성하는 오행과 연결 짓는 제목을 부여한다. <오행성>에서 가지런히 배열된 오곡은 제자리를 찾은 별자리처럼 보인다. 마침내 작가는 땅과 하늘의 질서가 모두 정연해진 소우주를 완성한다.
<안녕>에서는 송윤주가 지향하는 무사태평의 세계가 궁궐의 꽃담 형식으로 펼쳐진다. 벽면 상단에는 열여섯 개의 수막새 문양이 나열되어 꽃담의 상부를 이루고, 그 아래에는 전서체로 쓰인 ‘수복(壽福)’, ‘강녕(康寧)’, ‘영락(永樂)’과 함께 각각 학, 용과 기린, 봉황의 도상이 배치된다. <안녕>에는 작가가 회화적 제의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이상적 가치가 수막새의 꽃무늬와 길상 문자 그리고 상서로운 동물 그림 속에 집약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림, 기호, 문자가 어우러진 <안녕>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 회화의 화면에 담아내고자 눈에 보이는 형상의 기원을 탐구해 온 송윤주에게 하나의 잠정적 해답 같은 작품이다.
《마치 있는 것처럼》은 회화적 제의이자 제의적 회화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인간이 제자리에서 도리를 다하고, 그 결과 자연과 귀신이 때를 맞추어 인간 세계와 함께 순환하며, 궁극적으로 우주가 질서와 조화를 회복하는 시화연풍(時和年豐)의 세계를 그려 낸 전시이다. 그러나 우주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세속의 인간이 죽음과 분리된 삶 그리고 과거와 단절된 현재 속에서 초월적 이상향에 닿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절대적 부재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여전히 잔존하거나 앞으로 도래할 것처럼, 즉 마치 있는 것처럼 상(象)으로 그려 낸다. 돌이켜보면 부재를 견디기 위해 부재하는 대상을 현존하듯 그렸던 것이 본디 그림의 기원이 아니었던가. 송윤주가 극진한 제의로 회귀하고자 하는 자신만의 상고시대는 보이는 것으로부터 핵심을 추출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림, 기호, 문자를 만들어 낸 조형의 발원지이자, 더 나아가 인간, 귀신, 도시, 자연, 우주가 하나의 원환 속에서 순환하던 완결적이고 총체적인 이상향이다.